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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 출간: 2008년 10월 31일
    • 저자: 토머스 모어
    • 낭독자: 김은정
    • 출판사: 펭귄클래식코리아
    • 러닝타임: 07:29:08

성 토머스 모어라고도 불리는 토머스 모어 경은 1477년 혹은 1478년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모턴 추기경 집안의 시종으로 있다가 추기경의 추천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으며, 법조계로 들어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하원의원과 런던 시 부행정사법관이 되었다. 성서와 교부철학, 고전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4년 동안 수도회 수도승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종교적 신앙심으로 청빈한 생활을 했고 공정한 재판관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교우했던 그는 1515년 네덜란드와의 조약을 협상하기 위한 영국 외교사절 일원으로 플랑드르 지방을 방문하였다가 에라스무스의 친구이자 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페터 힐레스를 만난 후 『유토피아』 집필을 시작하였다. 1516년 런던에서 『유토피아』를 완성하고, 12월경 루뱅에서 출판하였다. 부고문관 직책으로 헨리 8세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여 1518년에 헨리 8세의 추밀 고문관으로 임명되었다. 1523년에는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최초의 평민 출신 대법관이 되었다. 헨리 8세와 루터와의 논쟁에서 『루터에게 보내는 답변』을 써서 헨리 8세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영국 교회와 성직자들에 고하는 수장령’을 선포하고, 이 수장령이 ‘기독교 교회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라는 조건하에 캔터베리 대주교 회의에서 공인되자, 토머스 모어는 이에 반대하며 국왕과 갈등하게 되었고, 결국 1532년 퇴임했다. 그는 영국 국교회 수장으로서의 국왕의 최고 권한을 부정한 죄로 반역죄로 몰려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고난에 맞서는 위안의 대화』를 집필하였다. 계속해서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서약과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지지하는 서약에 확고부동하게 반대한 모어는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재판을 받아 사형 판결을 받고 1535년 참수형에 처해졌다. 모어의 죽음은 온 유럽을 경악시켰고 에라스무스는 “토머스 모어는 눈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그와 같은 천재성을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1886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복(諡福)이 되고, 193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이 되었다. 에라스무스, 콜레트, 릴리 같은 저명한 르네상스 학자들의 친구였고, 리니커와 그로신의 제자였던 모어는, 진정한 인간이자 학자로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미란돌라 백작 존 피쿠스의 생애』, 『리처드 3세 연대기』도 집필했다.

사회사상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 르네상스 문학의 고전이자 사회사상의 고전인 토마스 모어의 작품『유토피아』. 16세기 유럽의 인문주의자였던 모어가 오랫동안 꿈꾼 이상적인 나라를 그린 정치적 공상소설이다.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대화체 문장을 그대로 살려 번역하였으며, 영역본 편집자의 서문과 판본 소개를 함께 수록하였다. 이 작품은 플랑드르 지방을 방문한 모어가 친구인 페터 힐레스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모어는 힐레스와 이야기하던 라파엘에게서 이상적인 섬나라인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어와 힐레스는 유토피아에 대해 질문하고, 라파엘은 그들에게 유토피아의 관습과 풍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부는 영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어는 당시 영국 사회의 혼란상과 모순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이상사회인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결핍과 착취가 없고 정의와 평등, 이성과 합리적 제도가 국가의 토대가 되는 세계를 통해 인간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진정한 공공성의 실현을 보여주고자 했다.